나츠메 소세키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 거 같다. 그의 작품 중 대학시절 읽은 건 '나는 고양이로소이다' 정도인 거 같은데 그마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. 나의 기억력은 그닥 뛰어난 편이 아니라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을, 아주 좋은 일보다는 좋았다가 나쁜 일을 더 잘 기억한다. 책의 경우에는 훨씬 한심해서 당시 아무리 감동적으로 읽었다해도 5년 내지 10년만 지나도 읽었는지 유무조차 가물가물해진다.
최근에는 에세이집 '유리문 안에서'를 다시 읽었고 그 후에 그가 쓴 소설이란 과연 어떤 냄새가 날까 궁금해서 '도련님'을 어린이 도서관에서 빌려봤다. 이 책을 다 읽고 나자 이게 왜 어린이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가 알게 되었다. 소세키의 수법인지(죄송..좀 화가 나서) 몰라도 그는 뒷 얘기를 계속 궁금하게 하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데 흡입력이 굉장하다. 나는 도련님의 얘기에 뭔가 숨겨진 진실이 더 있을 거라고 여겨서 그게 뭔지 알고 싶은 생각에 무리를 해서 하루에 읽어치웠는데 결국은 그런 건 없었어. 플롯이 무척 단순했고 도련님이 미쳐서 망상을 한 게 아니라 일련의 사건이 전부 사실이었던 거다. 복잡한 이야기를 상상했던 건 현대소설에 익숙한 나 자신의 헛된 바람이었다는 거에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.
그렇다고 소설 자체가 나빴다는 건 아니다. 오히려 나는 도련님 같은 성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집사 같은 존재인 '기요' 할머니의 존재에 친밀감을 느꼈다. 기요는 나츠메 소세키 집안의 실제 하녀와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. 소세키는 어릴 때 남의 집에 양자로 보내졌다가 누나에 의해 본가로 돌아왔는데 부모의 귀여움을 받지 못했다. 게다가 부모인 줄도 모르고 할머니, 할아버지로 부르고 있었는데 집안 식구들조차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 걸로 봐서 입적하려는 의지가 없었다고 봐야했다. 그 와중에 하녀가 밤에 몰래 '이 분들은 사실 조부모가 아니라 도련님의 부모님이다'라고 알려준 에피소드를 알고 있었기에 맹목적인 기요의 사랑이 소세키의 실제와 오버랩 되는 거다. 그는 그 두 분이 친부모임을 알아서 기쁜 게 아니라 하녀가 친절하게 대해준 게 기뻤다고 했다. 나는 그 또한 십분 이해가 되면서 소세키의 섬세한 마음이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.
그는 놀라울 정도로 우아한 남자인데 솔직히 말하면 난다긴다하는 문학작품을 읽어도 글에서 우아함을 느끼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. 그것도 거만하고 뭔가 꾸며대는 태도로 우아함을 가장하는 게 아니라 사람 자체가 격조가 있다. 이 정도 우아함은 윤동주와 오스카 와일드에게서 느껴본 이후로 처음인 거 같다. 윤동주의 우아함은 청년 시절에 요절한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때묻지 않은 순수함에서 나오지만 그보다 오래 산 나츠메는 이미 모든 세상사를 다 알고 있음에도, 자신의 못난 부분을 다 드러내는 가운데 조용히 풍겨나오는 거라 난초와 같다.
예전에는 윤동주를 더 좋아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염세주의적 냄새가 나는 나츠메 쪽에 더 공감하고 있다.
오늘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'마음'을 읽고 있는데 이 또한 뒷얘기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. 내 눈 상태로 몇 시간씩 책을 읽는 건 혹사나 다름없는 일이나 뒷장을 먼저 펼쳐보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면서 순서대로 한 장씩 보고 있다. 여기 '마음'에서 나오는 선생님이라는 인물이 내 주변에 있는 어떤 사람과 너무 흡사해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.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.. 그렇다고 묻는 말에 거짓을 말하는 것도 아니오, 모든 질문을 다 거절하는 것도 아닌. 주인공인 '나'가 주변 인물들과 주고 받는 대화도 기가 막힌다. 고향집의 아버지나 어머니와 주고 받는 말에도 무릎을 치게 된다. 한 사람이 사회적 인물로서 처한 상황과 대사가 딱 맞아떨어져 조연의 문장 한 줄도 그냥 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.
대단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. 아니, 아직까지는 그렇다. 자잘한 사건이 많았던 '도련님'조차 사건이 중심인 소설은 아니었다. 소세키 소설과 에세이의 뛰어난 점은 그의 면밀한 관찰력에 있지만 그 정도는 호기심 많은 누구나가 가질 수 있는 것이다. 내가 끌리는 이유는 사람 심리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에 있다. 관찰력과 통찰력은 다르다. 아직도 남의 마음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. 게다가 자주 병에 시달렸던 소세키의 건강치 못한, 그러나 단정한 얼굴이 역시 건강치 못한 나에게 동병상련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하기까지 하다. 어떻게 내가 다소 못생기고, 너무나 신체 건강한 무라카미 하루키에 완전히 공감할 수 있겠는가? -_-;
최근에는 에세이집 '유리문 안에서'를 다시 읽었고 그 후에 그가 쓴 소설이란 과연 어떤 냄새가 날까 궁금해서 '도련님'을 어린이 도서관에서 빌려봤다. 이 책을 다 읽고 나자 이게 왜 어린이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가 알게 되었다. 소세키의 수법인지(죄송..좀 화가 나서) 몰라도 그는 뒷 얘기를 계속 궁금하게 하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데 흡입력이 굉장하다. 나는 도련님의 얘기에 뭔가 숨겨진 진실이 더 있을 거라고 여겨서 그게 뭔지 알고 싶은 생각에 무리를 해서 하루에 읽어치웠는데 결국은 그런 건 없었어. 플롯이 무척 단순했고 도련님이 미쳐서 망상을 한 게 아니라 일련의 사건이 전부 사실이었던 거다. 복잡한 이야기를 상상했던 건 현대소설에 익숙한 나 자신의 헛된 바람이었다는 거에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.
그렇다고 소설 자체가 나빴다는 건 아니다. 오히려 나는 도련님 같은 성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집사 같은 존재인 '기요' 할머니의 존재에 친밀감을 느꼈다. 기요는 나츠메 소세키 집안의 실제 하녀와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. 소세키는 어릴 때 남의 집에 양자로 보내졌다가 누나에 의해 본가로 돌아왔는데 부모의 귀여움을 받지 못했다. 게다가 부모인 줄도 모르고 할머니, 할아버지로 부르고 있었는데 집안 식구들조차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 걸로 봐서 입적하려는 의지가 없었다고 봐야했다. 그 와중에 하녀가 밤에 몰래 '이 분들은 사실 조부모가 아니라 도련님의 부모님이다'라고 알려준 에피소드를 알고 있었기에 맹목적인 기요의 사랑이 소세키의 실제와 오버랩 되는 거다. 그는 그 두 분이 친부모임을 알아서 기쁜 게 아니라 하녀가 친절하게 대해준 게 기뻤다고 했다. 나는 그 또한 십분 이해가 되면서 소세키의 섬세한 마음이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.
그는 놀라울 정도로 우아한 남자인데 솔직히 말하면 난다긴다하는 문학작품을 읽어도 글에서 우아함을 느끼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. 그것도 거만하고 뭔가 꾸며대는 태도로 우아함을 가장하는 게 아니라 사람 자체가 격조가 있다. 이 정도 우아함은 윤동주와 오스카 와일드에게서 느껴본 이후로 처음인 거 같다. 윤동주의 우아함은 청년 시절에 요절한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때묻지 않은 순수함에서 나오지만 그보다 오래 산 나츠메는 이미 모든 세상사를 다 알고 있음에도, 자신의 못난 부분을 다 드러내는 가운데 조용히 풍겨나오는 거라 난초와 같다.
예전에는 윤동주를 더 좋아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염세주의적 냄새가 나는 나츠메 쪽에 더 공감하고 있다.
오늘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'마음'을 읽고 있는데 이 또한 뒷얘기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. 내 눈 상태로 몇 시간씩 책을 읽는 건 혹사나 다름없는 일이나 뒷장을 먼저 펼쳐보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면서 순서대로 한 장씩 보고 있다. 여기 '마음'에서 나오는 선생님이라는 인물이 내 주변에 있는 어떤 사람과 너무 흡사해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.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.. 그렇다고 묻는 말에 거짓을 말하는 것도 아니오, 모든 질문을 다 거절하는 것도 아닌. 주인공인 '나'가 주변 인물들과 주고 받는 대화도 기가 막힌다. 고향집의 아버지나 어머니와 주고 받는 말에도 무릎을 치게 된다. 한 사람이 사회적 인물로서 처한 상황과 대사가 딱 맞아떨어져 조연의 문장 한 줄도 그냥 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.
대단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. 아니, 아직까지는 그렇다. 자잘한 사건이 많았던 '도련님'조차 사건이 중심인 소설은 아니었다. 소세키 소설과 에세이의 뛰어난 점은 그의 면밀한 관찰력에 있지만 그 정도는 호기심 많은 누구나가 가질 수 있는 것이다. 내가 끌리는 이유는 사람 심리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에 있다. 관찰력과 통찰력은 다르다. 아직도 남의 마음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. 게다가 자주 병에 시달렸던 소세키의 건강치 못한, 그러나 단정한 얼굴이 역시 건강치 못한 나에게 동병상련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하기까지 하다. 어떻게 내가 다소 못생기고, 너무나 신체 건강한 무라카미 하루키에 완전히 공감할 수 있겠는가? -_-;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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